'1년 만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 젤렌스키 대통령의 '레임 덕'인가?
'1년 만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 젤렌스키 대통령의 '레임 덕'인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12.06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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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을 비판, 비난하는 목소리가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시사 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등 마치 민주주의 가치의 서방 세계를 구한 듯한 '영웅'으로 꼽혔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보다 그가 지루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부수로 삼았던 '여름철 반격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한 책임론이 커 보인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우크라이나에서는 반격 실패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에 대한 '비난 게임'이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정치 지도부와 군 장성들이 서로 실패의 책임을 떠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반격 작전이 성공했다면, 서로 전과에 숟가락을 얹겠다고 난리를 쳤겠지만, 교착 상태에 빠지니,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꼬집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군총참모장/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반격 실패에 대한 우크라-서방 간의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워싱턴 포스트(WP)는 3일 반격 작전에 대한 우크라-서방 간의 묵은 갈등을 들추며 "미군은 우크라이나가 기본적인 군사 전술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우크라이나 측은 미국이 드론으로 대표되는 '현대 전자전'이 전장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반박한다"고 지적했다. 

WP는 "작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설득력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은 반격 첫 달(6월)은 서방 측에 키예프(키이우) 앞날에 냉정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면서 "그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1991년 국경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우긴다"고 비판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대(對) 우크라 지원 축소를 느긋하게 기다리며, 기존의 점령 지역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고 그 어느 때보다 확신한다"고 WP는 썼다.

반격 실패는 전쟁 승리라는 대의(大義) 앞에 숨죽이고 있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적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특히 중앙정부보다 지역민과 더 밀접한 지방정부 수장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겨울 러시아의 키예프 공습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 측근들로부터 '제대로 대비를 못했다'는 공격을 줄기차게 받았던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이 작심한 듯 비판에 나섰다.

한때 젤렌스키 대통령실의 고문이었다가 해임된 올렉시 아레스토비치도 반(反) 젤렌스키 전선의 최선두에 선 느낌이다.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

클리치코 시장의 비판은 이제 시작일런지 지 모른다. 보기에 따라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조금씩 사면초가(四面楚歌)로 몰리는 형국이다. '1991년 국경 회복'이라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면 현재 돌아가는 전황을 유리하게 바꾸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재정·군사지원이 필수적인데, 젤렌스키 대통령 앞에 놓은 벽이 너무 높아 보인다.

클리치코 시장은 3, 4일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 스위스 일간 '20미누텐' 등과 잇따라 만나 전쟁 승리를 공언해온 대통령을 향해 "우리는 부하 직원과 국민, (서방) 파트너들에게 '기분 좋은 거짓말'을 할 수는 있으나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며 "전쟁 초기에도 러시아군의 공격을 버텨낸 건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은 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더 잘 대비하지 못했는지를 궁금해 한다”며 '마지막까지 전쟁은 없다'고 확신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원죄를 거론했다. 나아가 "대통령은 그가 한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결국 실각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클리치코 시장의 비판은 또 젤렌스키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직격했다. 전쟁을 기화로 대통령이 독재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 "시장과 주지사들의 독립성이 겨우 우크라이나의 독재화를 막고,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만, "전쟁 중에는 대통령을 교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발 비껴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권위주의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를 앞세워 야당을 압박하는 행태로도 나타나고 있다. SBU는 지난 2일 우크라이나 최대 야당을 이끄는 포로셴코 전대통령의 출국을 막았다. '푸틴 대통령의 친구'이면서 반우크라 성향을 표출하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회담이 잡혀 있다는 이유에서다.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폴란드와 브뤼셀,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항변했으나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데 결국 실패했다. 그의 당(유로연대) 의원 3명도 해외 출국이 허용되지 않았다.

국경수비대 요원과 국경통과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포로셴코 전 대통령/텔레그램 영상 캡처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 등 군부와 갈등도 심화할 조짐이다. 군부는 앞으로 전쟁을 계속하려면, 부족한 병력 보충을 위해서라도 27세로 된 '동원 하한선'을 25세 밑으로 낮춰줄 것을 계속 요구해왔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 입장에서는 섣불리 동의하기 어렵다. 젊은 계층은 대선에서 자신의 주요 표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회피할 수만은 없다. 개전 직후, 동원 혹은 자원입대한 남편·아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어머니들의 시위가 점점 더 호응을 얻어가고 상태다.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의 일부 강성 지지층에서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해임으로 판을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잘루즈니 총참모장이 해임될 경우, 군부를 중심으로 쿠데타가 벌어지거나 '제 3의 마이단'(대규모 시위)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아레스토비치 전 대통령실 고문은 3일 "(반격 실패의 책임을 물어) 비난할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며 "잘루즈니 총참모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캠페인은 군사 쿠데타나 또다른 마이단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NBC 뉴스도 '우크라이나는 반격의 실패로 스스로와 러시아, 국제사회의 관심 하락과 싸우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해임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NBC 뉴스 웹페이지/캡처

정치적으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을 놓고 오락자락하는 행보로 스스로 '레임덕'을 초래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끌면서 인기가 높아진 잘루즈니 총참모장을 의식한 듯, "내년 3월 대선은 없다" "있다"를 반복했다. 의회내 각 정당이 최근 '장 모네 대화'에서 내년 대선을 치르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현지 분위기는 여전히 대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번이 아니면 연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떨어지는 지지율로 입증되고 있다.

한마디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그동안 지탱해온 국내 지지와 서방의 지원이 무너져가는 데 대한 냉정한 국민 평가(여론)라고 할 수 있다.

해외 상황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1년 전과는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해 미국 하원연설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던 기억은 이제 아득한 과거가 됐다. 지난 9월 워싱턴을 방문했으나, 냉대를 받았고, 미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 지원을 (불법 이민을 막는) 남부 국경지대의 경비 강화 정책과 '딜'할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민자들로 구성된 자신(민주당)의 표밭을 포기하지 않는 한, 쉽지 않는 '딜'이라는 게 현지 분석이다.

EU도 친러시아 성향의 헝가리를 주축으로, 정권이 바뀐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극우정당이 이긴 네덜란드에 불가리아까지 가세해 과도한 우크라이나 지원을 막아서고 있다. 대우크라 지원에 적극적인 독일은 예상치 못한 2022, 2023년 예산의 위헌 문제에 발목이 잡혀 집행할 자금 자체가 부족한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 정치전문 폴리티코는 '드리머(dreamer) 1위'로 젤렌스키를 꼽았다. 말이 좋아 드리머이지,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가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그의 기대와 다르다.

드리머 No1, 젤렌스키 대통령/폴리티코 캡처

샬란다 영 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4일 의회에 "의회의 조치가 없을 경우, 올 연말까지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장비를 보낼 재원이 바닥난다"며 "지원이 끊길 경우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무릎을 꿇고, 러시아의 군사적 승리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랜 전쟁에 지친 EU도 단일대오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친러 성향의 헝가리의 반우크라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4일 샤를 미셸 유럽 이사회 의장(정상회의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EU내 합의가 부족하다"며 "오는 14, 15일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금융 지원과 EU 가입 협상 개시를 의제에 올리지 말 것"을 촉구했다. 정상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와의 가입 협상 개시를 승인하고, 2027년까지의 재정 지원 계획을 확정하기로 한 상태다.

그는 "앞으로 4년간 우크라이나에 대해 대출과 보조금 형태로 500억 유로를 금융 지원하는 방안은 EU의 실정에 비춰볼 때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도 EU의 대 우크라 500억 유로 지원이 큰 위협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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