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승전 아이콘 '여성 저격수', 그들에게도 '전쟁은 죽음'이다?
우크라 승전 아이콘 '여성 저격수', 그들에게도 '전쟁은 죽음'이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1.0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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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도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러시아 영화 '세바스토폴 상륙작전'(원전은 '세바스토폴 전투·Битва за Севастополь, 2015년 개봉)는 1941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공방전(실제로는 나치 독일군의 포위전)을 배경으로 전설적인 여성 저격수의 삶을 다룬다. 지금까지 '저격수의 전설'로 남아 있는 루드밀라 파블리첸코가 실제 인물이다.

그녀는 오데사 전투와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불과 10개월 정도 저격수로 활약하면서 독일군 309명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 심장을 한껏 조이는 독일군 최고 저격수와의 마지막 대결에서도 패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는 독일군 저격수만 무려 36명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영화 '세바스토폴 상륙작전'의 여주인공 루드밀라(페레실드 분)/영화 장면 캡처

루드밀라는 소련군 당국의 필요에 의해 일정 부분 '영웅'으로 만들어졌겠지만, 1942년 미 백악관의 초청을 받아 루즈벨트 대통령의 영부인을 만난 걸 보면, 그녀의 활약을 인정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전설적인 여성 저격수 루드밀라 후광의 우크라

어쩌면 그녀의 이름 하나로 우크라이나는 제 2차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여성 저격수'의 본산으로 꼽히고 있는 지도 모른다. 루드밀라는 우크라이나 빌라체르크바 출생-키예프(키이우) 성장 배경을 지녔기 때문이다.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들이 '검은 숙녀'(루드밀라의 별칭)로 서방 외신에 의해 집중 조명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군당국(혹은 정보기관)으로서도 적(러시아)군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주고, 자국민에게는 승리 기대와 자부심, 군 자원 입대를 부추기는 홍보 전략으로 그만한 소재가 없었다. 많은 여성들이 자원 입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저격수도 적의 날카로운 공격을 피해할 수는 없는 법.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지난 연말 전해졌다. 

러시아 매체 '아르구멘티 이 팍티'(논거와 사실 Aif.ru)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성향의 연대에서 근무한 여성 저격수 엘레나 벨로제르스카야(43)는 지난 12월 27일 죽은 전우 18명의 얼굴을 소셜 미디어(SNS)에 올렸다. 텔레그램 채널 '블록노트'은 "그녀가 추모한 전우 대다수는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에서 사망했다"며 "이 사람들이 (죽은 동료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18명 중에는 '몰니야'라는 호출 부호를 가진 다리아 필리피예바도 포함돼 있다. 그녀는 지난해 8월 러시아 저격수와의 대결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우크라 여성저격수 엘레나(아래)가 SNS에 올리고 추모한 죽은 동료들의 얼굴들/SNS 캡처 

◇ 우크라 최전선의 여성 저격수 아이콘 '엘레나'
 

엘레나는 1941년 세바스토폴 공방전의 '전설' 루드밀라를 떠올리게 하는 저격수다. 한때 언론 매체에서 일했던 탓인지, 우크라이나 안팎의 언론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여성 저격수다. 우크라이나 언론은 그녀를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충돌했던)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전투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녀가 친러시아 무장병사 2명을 저격하는 영상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최소 10명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20년 전역한 그녀는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에 맞서 다시 '저격용 라이플'(소총)을 잡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 홍보에 나섰다. 또 '더 선'과 '데일리 메일'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과의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응했다.

엘레나 벨로제르스카야/사진출처:SNS

엘레나는 자신의 '소총'을 친구와 같다는 의미에서 '갈리아'라는 이름까지 지어줬고, "(최전선에서) 사람을 죽인 데 대한 도덕적인 고통은, 전쟁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언론 인터뷰에서 "취미로 곡사포 쏘는 것을 좋아하며, (소총으로든, 곡사포로든) 러시아인을 죽여버리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함께 적의 테러로부터 보호 대상자로 올라 있으며, 전투지역 밖에 머물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열도 있고 아프다"고도 했다. 스스로 홍보에 능한 엘레나가 이같이 발언하는 걸 보면, '그녀도 부상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 우크라군의 여성 저격수 프로파간다(선전)

우크라이나군은 개전 직후부터 (여성) 저격수 홍보에 열을 올렸다. 개전 열흘 후쯤(2022년 3월 3일) 서방의 일부 외신은 "러시아 중부군관구 제41연합군 부사령관 안드레이 수호베츠키(андрей суховецкий) 소장이 우크라이나 저격수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측 주장에 힘을 실은 것이다. 나중에 공식적으로 알려지기로는 수호베츠키 소장은 2022년 2월 28일 (초기 최대 격전지인) 마리우폴 공격을 지휘하던 중(우크라이나 국방안보회의 발표) 우크라이나군의 박격포 공격에 당한 것으로 기록됐다(러시아 언론 보도). 

한달 뒤(4월 5일) 우크라이나군은 페이스북에 스카프로 코와 입을 가린 여성 저격수 '차콜'의 모습을 공개했다. 위장망으로 가린 자신의 저격용 소총을 어께에 맨 모습이 인상적이다. ‘차콜’은 그녀의 호출부호다.

‘차콜’은 지난 2017년 해병대에 입대했으며,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 반군세력과 싸우다가 2022년 1월 전역했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공격에 저격용 소총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그들(러시아군)은 사람도 아니고, 나치도 이 괴물들처럼 악하지 않았다"며 "나는 끝까지 맞설 것이고. 우리는 분명히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뉴욕포스트와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그녀의 존재를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 공군의 전설 '키예프(키이우)의 유령'(Ghost of Kyiv)과 같은 반열에 놓았다. "차콜이 러시아 전투기 6대를 혼자서 격추했다는 '키예프의 유령’처럼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하지만 '키예프의 유령'이 나중에 우크라이나 공군에 의해 실존 인물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것처럼, '차콜'도 허구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러시아 공격을 코 앞에 둔 2022년 1월 말 30여초 분량의 저격수 훈련 영상을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저격수란 존재가 비밀리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공개 자체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우크라이나 저격수들이 이 영상에서 훈련시 사용한 총은 UAR-10 7.62㎜ 반자동 저격총으로, 최대 1.2㎞ 떨어진 표적을 정확히 맞힐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AR-10은 지난 2019년 우크라이나가 자체 개발한 최신형이다.

◇우크라 여성 저격수의 규모는?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들이 실제로 얼마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을까?
안나 말랴르 전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지난 2022년 말 우크라이나 여군의 규모는 약 3만 명으로, 그중 전투병은 5,000명 이상이며, 여성 저격수도 수십 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국방부 자료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에는 약 4만3,000명의 여성이 복무하고 있으며, 이는 2021년보다 약 40% 증가한 수치"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 “개전 이후 여성이 군에서 기관총 사수, 전차장, 저격수 등의 보직을 맡을 수 없도록 한 제한을 풀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여성 저격수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여군/사진출처:스트라나.ua

러시아 군사 전문가들은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선전이나 정치적 홍보에 자주 활용될 뿐, 실전에서는 미미한 존재라는 것이다.

러시아 군 역사학자 미하일 폴리카르포프는 aif.ru에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 만큼, 최전선 근처에 긴 소총(저격용)을 가진 우크라이나 여군이 많지 않다"며 "그 이유 중 하나는, 저격수란 보직을 맡으면 매우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 늘 일하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고위인사 경호 등에 나서는 경찰 특수 부대에서 여성 저격수들이 훨씬 더 자주 발견된다고 했다. 저격용 소총을 든 여성이 인터넷에 등장하면, 이는 선전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의 확인은 서방 언론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12월 말 관심이 높아진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들의 훈련 모습을 취재, 소개하면서 그들이 전투 현장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훈련 중인 여성 저격수 옥사나는 이코노미스트 측에 “여성 저격수는 적군에게 잡히면 강간‧고문당한 뒤 처형될 것이기 때문에 늘 수류탄을 품고 다니며 자폭을 준비한다”고 고백했다.

1941년의 루드밀라와 달리, 그녀들 괴롭히는 또다른 어려움은 드론의 존재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해 10월 두 아이의 엄마인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 이리나를 조명하면서 "러시아군의 드론이 그녀에게 가장 큰 위협"이라고 전했다. 드론의 움직임을 거의 예측할 수 없어서다. 특히 드론에 부착된 열화상 카메라는 저격수의 체온을 탐지해 은폐한 위치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적(러시아)의 저격수도 위협적이다.이리나는 "러시아군에도 훌륭한 군인(저격수)이 있다"고 인정했다.

◇ 러시아측의 대응 

러시아 매체 렌타루(2023년 11월 22일)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와의 결투를 결코 피하지 않는다.

러시아군의 저격수 코발트(호출부호)는 특수 군사작전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여성 저격수와의 만남을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상대가 나보다 더 경험이 많은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다. 나의 존재를 먼저 알고 먼저 쐈다. 오랫동안 숨어서 살펴본 결과, 상대 저격수가 35~40세의 여성이었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는 "나중에 (여성 저격수가) 드문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아무리 상대가 여성이라도 나를 죽이려는 적이니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저격수의 특징에 대해 "그들은 대부분 상대의 다리와 배에 총을 쏘는데, 신속하게 대피할 수만 있다면 상처는 치명적이지 않다"면서 그러나 "저격수는 근처에서 빨리 의료 지원을 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 부상은 고통스러운 일이자 (상대를) 조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격수는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때로는 최대 8km까지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가 고통받지 않도록 원샷에 보내려고 한다, 그게 상대를 존경하는 행위"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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