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군수 무기 공장 겨냥 '핀 포인트' 폭격에 나선 러시아, 의도야 분명하지만..
우크라 군수 무기 공장 겨냥 '핀 포인트' 폭격에 나선 러시아, 의도야 분명하지만..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1.15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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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지난해 12월 29일, 1월 2일, 8일에 이어 닷새만인 13일 또 우크라이나 특정 목표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전의 세 차례 공격에 비하면 그 규모가 절반에도 못미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155㎜, 152㎜, 125㎜ 포탄과 탄약, 드론 등을 만드는 군수공장을 공격했다"며 “공격 목표는 달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어디로 어떤 미사일이 날아왔는지 공개하지 않은 채, 러시아 미사일 35발 중 8발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kh-101(러시아 식으로는 X-101)/kh-555/kh-55 미사일 7발과 kh-59 미사일 1발을 요격했다는 것이다.

미그-31k 전투기에 탑재된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측은 이번에도 S-300/S-400 미사일(7기)와 극초음속미사일 킨잘(6발), kh시리즈 순항미사일(11발), 이스칸데르M 탄도 미사일(6기) Kh-31P/Kh-59 공대지 미사일(5발) 등은 격추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20여 발은 전자전으로 인해 무력화됐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측의 이같은 발표가 믿을 게 못된다는 분석도 있다.
스트라나.ua는 14일 하루를 결산하는 기획기사의 '새로운 우크라이나 폭격'(Новый обстрел Украины) 코너에서 "우크라이나 공군이 발표한 미사일 격추 자료의 정확성은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우크라이나의 사기를 높이고 서방 방공 시스템의 효과적인 작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때에는 미사일의 대거 격추를 발표하고, 서방으로부터 방공 시스템과 방공 미사일 공급을 더 받아내려고 할 때에는 격추된 미사일의 수를 줄임으로써 러시아군 공습의 심각성과 신속한 지원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공습에서 새롭게 주목해야 할 것은, 러시아 미사일의 규모나 격추율이 아니다. 폭격 대상이다. 러시아 측은 "드론과 포탄, 탄약 생산 공장을 타격했으며 목표는 달성됐다"고 했다. 간단하고 명확한 메시지다. 우크라이나 군지휘부와 병력 집결지, 서방 제공 무기, 방공망, 주요 인프라 시설 등이라는 긴 표현이 아니었다.

굳이 해석하자면, 지난 세 차례 대규모 공습에서는 넓은 범위의 타격 목표중에 일부 군수산업체가 포함됐지만, 이번에는 아예 군수공장을 '핀포인트 공격했다'는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군수 산업체의 위치 정보 등 관련 자료가 충분히 확보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 의원이자 인플루언스인 이고르 모시추크는 지난 4일 "러시아군의 12월 29일 키예프(키이우)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군수 분야 설계업체인 '루치'(Луч)와 제작 공장 '아르촘'(Artem)이, 1월 2일 공습으로는 전자 장치 생산 공장 '크바자르'(Квазар)와 군사 장비 수리 전문 업체 '마야크'(Маяк) 등이 피해를 입었다"며 "보안국(SBU)이 위치 정보 제공자를 찾고 있는데, 그 위치는 이미 위키피디아에 다 나와 있다"고 비꼬았다.

우크라이나 군수산업체 아르쫌/사진출처:스트라나.ua
불타는 우크라이나 군복업체 엠-타스/사진출처:페이스북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즐겨 입는 전투복을 생산하는 군복업체 M-타스 공장도 2일 공습으로 폐허가 됐다. 이 회사 마케팅 담당자 알렉세이 돈첸코는 "생산 시설뿐 아니라 수입 원자재가 쓸 수 없게 됐으며, 생산을 재개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타스는 지난 2014년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내전 때 설립된 군복 브랜드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 발레리 잘루즈니 총참모장(합참의장 격) 등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자주 입는 옷을 만들고 있다. 

러시아군이 타격 목표를 변경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군사지원 삭감에 대비해 스스로 군사장비 생산에 나서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개전 초기 전황을 브리핑했던 안나 말랴르 전 국방차관은 13일 "러시아의 최근 공습은 우리의 군 전력을 소진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탄약과 장비를 비축하거나, 생산을 통해 회복할 시간이 주지 않기 위해 공격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여름부터 미국과 독일 등 서방 기업들과 군사 장비의 자체 생산 방안을 모색하고, 추진해왔다.

지난해 12월 초 미국에서 열린 미-우크라 군산복합체 포럼에서 올렉산드르 카미신 우크라이나 전략 산업부 장관은 "미국 방산업계 2곳과 손 잡고 재래식 무기에 쓰이는 155㎜ 포탄을 공동 생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는 155㎜ 구경의 포탄을 생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파트너가 보유한 기술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155㎜ 포탄은 곡사포 등 서방 측의 재래식 무기에 널리 쓰이는 주요 포탄이다. 러시아(구 소련)는 152㎜ 포탄을 쓴다.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도 "적의 생산 규모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군수 산업을 키우는 건 우리에게 생존의 문제"라며 지원을 요청했다. 이 포럼을 앞두고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은 "미국과 탄약, 방공망, 드론, 전자전 장비의 공동 생산이 목표"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곳은 역시 독일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Rheinmetall)의 아르민 파페르게르 CEO는 지난해 12월 2일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르면 2024년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장갑차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갑 차량 '여우'(러시아어로는 Лиса, 독일은 Fuchs)와 보병장갑차 '시라소니'(러시아어로는 Рысь, 독일은 Lynx) 두 가지 모델이다. 그는 "6~7개월 안에 '여우'를, 12~13개월 내 '시라소니'가 생산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라인메달은 레오파드 전차(탱크)를 만드는 독일의 대표적인 방산업체다. 

독일 라인메탈의 장갑차량 '여우'/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가 자체 생산의 의욕을 갖고 있는 분야는 단연코 드론이다. 
카미신 장관은 지난해 10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나토(NATO) 군사관련 포럼에서 "2023년 말까지 우크라이나는 매달 수만 대의 드론을 생산할 예정"이라며 "이 분야는 우크라이나에서 탄약이나 군용 무기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군산복합체의 역량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필요한 양과는 거리가 멀다”며 이같이 밝혔다. 새해(2024년) 우크라이나의 드론 생산에 거의 480억 달러의 예산이 할당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측의 이같은 발언과 행보는 러시아에게는 '도발'이나 다름없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방공망을 무력화한 뒤(추정), 군수업체를 향해 정밀 타격을 가하는 이유다.   

물론, 우크라이나 군수산업의 활성화에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많은 공장들이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이미 폐허가 되다시피했다. 또 새로운 공장은 운영 즉시 러시아군의 폭격 타깃이 될 게 분명하다. 최근의 공습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카미신 장관도 철저한 비밀유지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드론과 장갑차, 탄약 생산및 수리에 관해 20여개 외국기업과 협약 및 각서를 체결했지만, 그 내용은 엄격한 비밀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대규모 군수 공장을 유지할 게 아니라, 철저히 분업화한 소규모 공장 체인을 만들고, 지하화하는 방안이다. 우크라이나의 항공 시스템 설계 분야 전문가인 비탈리 자이체프는 "(군사 장비를) 생산할 곳을 찾고 필요한 물류의 확보에 이르기까지 비밀 보장이 중요하다"며 "조립 과정을 분업화하고 우크라이나 서부의 산악지역에 지하 공장을 건설할 경우,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에서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키예프에서 개최된 국제방위산업포럼에 참석한 250개 이상의 서방 군수산업 기업 대표들도 이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에서 사용하는 '카이저 시스템'(систем Caesa)을 만든 프랑스 방산업체 넥스터 그룹(Nexter group)과 바이락타르 드론을 만드는 터키의 'Baykar Makina, 독일 라인메탈 AG 등이 우크라이나와의 합작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군수공장/사진출처:스트라나.ua

나토 측도 적극적이다.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계속 제공하는 것보다는, 자체 군수산업을 재건하는 게 우크라이나 경제 발전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이 지난해 9월 영국과 프랑스 국방장관들과 키예프의 방위산업포럼을 찾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 방산업체 대표 20여 명이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장관과 동행해 우크라이나 측과 약 20개의 계약, 의향서 혹은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뉴욕타임스(NYT)도 "러시아의 끊임없는 공습에 위험하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와의 합작이 서방 무기 제조업체들에게도 수익성이 좋은 비즈니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서방 측은 우크라이나 내부 문제도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불공정한 사법 시스템과 자산및 재산권 보장, 인허가와 관련된 행정관청의 부패, 통신및 전력 단절 문제에다, 동원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까지 겹쳐 있다.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전쟁 중에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군수 물자 생산을 시작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군수산업체를 겨냥한 러시아군의 '핀포인트 공격'이 가장 위협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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