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CIS 토크)러시아 대선의 숨겨진 관전 포인트:경제적 불평등이 투표율을 결정한다?
러시아CIS 토크)러시아 대선의 숨겨진 관전 포인트:경제적 불평등이 투표율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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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0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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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4년 제 3호(Vol. 03, 2024년 3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보름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다뤘다. 김현진씨(박사 과정, 러시아·CIS 정치 전공)가 쓴 '3월 러시아 대선의 숨겨진 관전 포인트:경제적 불평등이 투표율을 결정한다?'이다. 소개한다/편집자

**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aa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크렘린 권좌의 주인을 결정하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5월 7일 취임하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로, 영토가 넓어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치러진다.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연방으로 편입한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州)와 루간스크주, 자포로제(자포리자)주, 헤르손주에서도 투표가 진행된다. 대세에는지장이 없겠지만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급사가 돌발변수로 작용해 선거 참여와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8일 크렘린에서 열린 특수 군사작전 참전 군인에 대한 금성훈장 수여식에서 자신의 다섯 번째 대권 출마 의사를 공식화했다. 서방의 제재와 신종 코로나(COVID 19) 팬데믹(세계적 유행)에 따른 경기 침체, 전쟁 장기화 등 여러 난제가 산적한 상황이라, 러시아인의 대선 투표 참여율과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두고 여러 예측과 논쟁이 이어졌다.

푸틴 대통령의 2024년 국정 연설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 경제적 불평등과 투표율:갈등이론 vs.자원이론

작년 9월 국회의원 보궐 선거 결과는 3월 대선 투표율의 '바로미터'로 제시된다. 당시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투표율이 20~40%로 낮아 선거의 정당성 확보에는 실패힌 것으로 평가된다. 투표율이 낮은 원인 분석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악화한 민생 문제가 결과적으로 투표율 저하를 야기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반면, 러시아 내 부정적 상황이 누적되면 시민의 투표 참여가 오히려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정치학에서 ‘갈등이론’은 후자의 관점을 반영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 시민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와 상치되는 의견도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 정치참여가 저하된다고 보는 ‘자원이론’이 대표적이다. 자원이론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더 큰 손해를 입는 집단들이 자신의 정책적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 과정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들의 선호가 적게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이다. 

◇ 러시아의 경제 불평등, 미·중보다 심각

러시아는 1990년대 시장경제로의 급격한 체제 전환과 사유화를 추진하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경험했다. 전례 없는 산업 생산의 하향화와 실질 임금 감소로 러시아 국민의 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악화하고 빈곤율이 급증했다. 그러다가 2000년 새천년의 경계선에서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상황은 개선되었다.

정치 안정과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등에 힘입어 러시아 경제는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 삶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고 절대 빈곤율도 감소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빈곤율 감소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평등 수준이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중국 미국의 계층별 자산및 소득 점유율(단위 %, 2022년 기준, 자료 World Inequality Database)

특히, 이 시기에 고소득층으로 부의 집중화 현상이 심화했다. 부의 집중화는 많은 국가에서 관찰되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러시아에서는 그 양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위의 표에서 나타나듯이 러시아의 상위 십분위의 자산 점유율은 중국과 미국을 앞질러 74%에 육박했고, 상위 1%의 점유율은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소득 점유율에서도 계층 간 격차가 더욱 벌어져 러시아가 중국과 미국을 추월했다. 이처럼 러시아에서는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부와 소득이 고루 분배되지 않은 채 특정 계층에 과도하게 집중되었다.

◇ 소득 불평등 심화가 러시아의 투표 참여를 저해한다?

지난 2000년 부터 현재까지 러시아에서는 대선이 다섯 번 치러졌다. 전국 기준 대선 투표율은2000년에 68.64%를 기록한 뒤 점차 감소했고, 2018년 대선에서는 67.5%로 집계되었다.

2000~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패널 자료의 지역별 투표율과 정부 지지율(괄호안은 해당 연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 

위 표와 같이 러시아연방 주체(연방 구성 지역)에 대한 패널 분석 결과, 야말로네네츠와 타타르스탄공화국과 같은 상위 소득 지역, 잉구세티야공화국과 다게스탄공화국과 같은 하위 소득 지역은 소득 불평등 수준이 낮고, 투표율과 정부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위 소득 지역은 도시화율과 불평등 수준이높고, 낮은 투표율과 지지율이 관찰되었다.하위 소득 지역에서는 중앙정부의 재분배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정권을 맹목적으로 지지·선호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 상위와 하위 소득 지역에서는 선거 참여율이 높아 투표율 저하가 상쇄되긴 했지만, 중위 소득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낮은 투표율과 정부 지지율은 러시아에서 대선이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기보다는 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전락했음을 보여주었다.

◇ ‘블랙 엘리펀트’로서 경제 불평등

사회학에서 ‘블랙 엘리펀트’란 용어가 자주 회자한다. 이미 광범위하게 예측·인식되었음에도 무시되다가 마침내 발생하면 주목받게 되는 ‘예고된 위기’를 말한다. 말하자면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방치하다 스스로 키운 재앙과 맞닥뜨리는 일이 생길 때 쓰는 표현이다. 기후 위기, 인구절벽, 팬데믹 등이 이에 해당한다.

러시아의 경제 양극화 문제는 당연하게 취급되고, 이런 문제가 국민의 정치 참여와 여론에 미친 부정적 영향도 종종 무시되었다. 권위주의 정부의 특성상 중도층의 투표율 감소는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연방 주체를 균형있게 통합해야 하는 러시아로선 국민의 정치참여 감소를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만은 없다. 경제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균열이 누적되면 언젠가 정권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러시아 대선에서 이례적인 결과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러시아 민심의 동향을 파악해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번 대선에서 나타나는 유의미한 변화를 발견해 '블랙 엘리펀트'의 징후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러시아 대선에서 투표율및 지지율과 함수관계에 있는 경제적 불평등에 주목한다.

대선 종료 이후 투표율과 푸틴 득표율을 분석해 보아야 명확해지겠지만, 추론컨데 러시아에 내재하는 다양한 '블랙 엘리펀트' 가운데 경제적 양극화 문제가 '예고된 위기'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투표율로 표현되는 국민의 정치 참여가 이번 러시아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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