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론으로 불거진 불편한 진실-4) 독일 '타우러스' 미사일 제공 논의, 러시아의 도청 능력
파병론으로 불거진 불편한 진실-4) 독일 '타우러스' 미사일 제공 논의, 러시아의 도청 능력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3.05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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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파병론' 제기 이후,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는 서방측 특수 부대와 미 CIA 등 정보기관들의 비밀 활동이 하나씩 폭로되는 가운데, 러시아가 독일군 고위 인사들의 통신망을 도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것도 숄츠 독일 총리가 공식적으로 누차 우크라이나 제공을 거부한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제곰및 활용에 관한 대화였다. 독일에서 암약하는 혹은 러시아에서 비밀 작전을 펴는 러시아 정보기관(연방보안국·FSB와 해외정보국·SVR, 소련 KGB의 후신)의 살아 있는 힘을 보여준 첩보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파병론으로 불거진 불편한 진실-4편'이다/편집자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의 특별 성명을 보도한 독일 매체의 웹페이지/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3일 특별 성명을 내고 독일 연방군 고위 인사들의 대화 폭로 사건을 '푸틴(대통령)의 정보 전쟁'으로 규정했다. 그는 "군 대화(통신)를 폭로하는 것은 허위 정보의 유포를 겨냥한 하이브리드 공격"이라며 "독일의 단결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려는 게 목적이어서 그의 수법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신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조사를 담당한 군 관련기관(군사정보국·MAD/편집자)으로 부터 자세한 보고를 받은 뒤 인사 조치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MAD는 대화 당사자들이 '통신 보안' 규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숄츠 독일 총리도 이 사건은 “매우 심각하다”며 신속한 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 러시아 국영 RT 편집장의 대담한 폭로
 
독일 정치권과 군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고위 장교들의 대화는 지난 1일 러시아 TV 채널 러시아투데이(RT)의 마르가리타 시모냔 편집장에 의해 폭로됐다. 그녀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 에 "제복을 입은 동지들(러시아 군·정보기관 요원/편집자)이 독일군 고위 장교들이 (러시아에 대한) 공격 방법을 논의하는 녹음 파일을 건네줬다"며 "40분짜리 이 녹음 파일에는 독일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를 파괴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독일 연방군 고위 장교들의 대화가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1일은 숄츠 총리가 "독일이 우크라이나 분쟁에 참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날이었다. 시모냔 편집장은 이를 빗대 “우리는 (숄츠 총리의 발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러시아는 크림대교 폭발 사건이 지난번(2022년 10월과 23년 7월 두차례/편집자) 어떻게 실행되고 끝났는지, 독일에게 적극적으로 상기시켜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주재 독일 대사와 독일 외무장관, 숄츠 총리에게 이에 대한 공식 논평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녀가 공개한 녹취록은 2월 19일 독일 연방 공군 참모총장 잉고 게르하르츠와 작전·훈련 책임자인 프랑크 그래페 장군, 독일군 우주사령부 작전본부의 펜스케, 프로스테트 요원 등 4명이 화상회의 플랫폼 '웹엑스'에서 나눈 대화다. 비록 암호화되지 않은 대화라고 하지만, 러시아 정보기관이 적어도 이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거나, '웹엑스'의 모든 대화를 도청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독일 측으로서는 중대한 '군 통신 보안'의 사건이다.

독일의 타우러스 장거리 미사일/사진출처:위키피디아

◇ "대화 내용이 장난 아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들이 나눈 대화 내용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이번 사건이 터진 뒤, 주요 외신들이 주목한 대화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프랑스가 아우디(Audi) Q7 SUV 차량으로 우크라이나에 '스칼프' 장거리 미사일(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공대지 장거리 미사일, 프랑스는 이를 스칼프, 영국은 스톰 섀도라고 부른다/편집자)을 제공하고, 영국은 '릿지백'(Ridgeback) 장갑차로 '스톰 섀도' 미사일을 전달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이는 장거리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 어떻게 전달되는지 알려주는 기밀 정보"라고 썼다. 또 "앞으로 러시아 정보기관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에서 그러한 차량들을 추적하고, 찾아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외신은 "독일 연방군 고위 장교들이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사거리 500㎞ 장거리 순항미사일 '타우러스'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구체적으로 타우러스 미사일을 50기씩 두 번에 걸쳐 총 100기를 인도하는 방안이 거론됐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또 "독일 장교들이 장거리 미사일이 부착될 무기 시스템과 우크라이나인을 훈련시키는 방법, (사용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에 대해 논의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스톰 섀도' 미사일 (운영)와 관련해 우크라이나에 (영국군) 몇 명이 파견되어 있다"는 언급(숄츠 총리가 장거리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제공을 거부하는 이유중 하나/편집자)도 녹취록에 등장한다.

스트라나.uarbc 등 러시아 언론이 소개한 녹취록의 주요 대목은 이렇다.

게르하르츠 공군참모총장은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 미사일을 제공하는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할 계획"이라며 "총리가 나에게 '정보를 얻고 싶다. 내일 아침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한 것과는 다르다. 총리는 왜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 미사일) 제공을 막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말도 안되는 소리들'이 확산되고 있으니 이 문제를 동료들과 조정하고 싶다"며 "뷔헬(Büchel)의 F-35 인프라(독일군 보안 내부 통신망/편집자) 전환 비용이 늘어나면 (의회) 예산위원회의 청문회에 불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방장관이 주재하는 (타우러스 미사일 관련) 회의를 위해 슬라이드 30개가 아닌 짧은 보고서및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게르하르트 참모총장은 “정치인들은 뷔헬(통신망)을 우크라이나와 직접 연결하면, 우리가 우크라이나 분쟁에 직접 참여한다고 우려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 경우, 정보 교환은 MBDA를 통해 이뤄진다고 주장하고, 전문가 중 한두 명을 슈로벤하우젠으로 보내면 된다. 물론 이것은 속임수이지만,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미사일) 제조업체를 통해 정보가 교환된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 군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다른 장교들은 "중요한 정보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폴란드의 특정 지점으로 보낼 것"을 제안했다. 또 "정보가 전달되면 기껏해야 6시간 정도면 비행기가 명령을 수행(전투기가 타우러스 미사일 탑재후 이륙/편집자)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게르하르츠 참모총장은 "그 곳에는 민간인 옷을 입고 미국식 억양으로 말하는 사람들(독일어를 구사하는 미군 비밀 요원들을 말하는 듯/편집자)이 많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공급된 (타우러스) 무기를 스스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장교들은 "독일이 위성 정보를 우크라이나로 전송할 수 있다"며 추가 지원 가능성을 밝혔다. 

그는 또 "타우러스 미사일은 8개월 안에 사용할 준비가 될 것"이라며 “한번에 5개씩 옮겨도 되니, 굳이 20개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른 장교들은 "미사일 50개의 우크라이나 이전이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즉시 50개를 제공하고, 최단시간 내에 50개의 미사일을 추가로 제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대꾸했다. 

독일군 우주사령부 작전본부의 프로스테트 요원은 "그 곳에는 동쪽에 있는 다리(크림대교/편집자)와 더 높은 곳에 있는 탄약고 등 목표물 2개가 있다"며 "다리는 멀고, 상당히 작은 표적이지만 타우러스로 (공격이) 가능하고, 탄약고도 타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두 가지 목표물 중 어느 것에 집중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말하자, 또다른 요원인 펜스케는 "검토 결과, 이 다리는 크기로 봐서 비행기 활주로와 유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10~20개의 미사일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게르하르츠 참모총장은 "다리 공격은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를 사용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펜스케 요원은 "그 경우 다리에 구멍을 낼 정도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미사일이 어린이집에 떨어져 어린이 등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폭탄을 투하하는 전폭기/사진출처:유튜브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 독일군 고위 인사들의 대화 음성 파일 공개/캡처

독일 공군 작전·훈련 책임자인 그래페 장군은 "우크라이나로의 미사일 인도 결정이 나더라도 8개월 후에나 사용 준비가 완료될 것"이라며 "민간인에게 미사일이 떨어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 작업을 더 빨리 수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이 문제는 '타우러스 미사일' 제조업체가 핵심 키를 갖고 있다"며 "기업의 동의 없이 독일 정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와함께 그는 타우러스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항공기'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독일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훈련시킬 것"을 제안하면서 "최소한의 훈련 프로그램이라도 그들에게는 무기고 파괴 등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케는 "뷔헬의 보안 통신망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에 기술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이같은 비밀 대화가 까발려지자, 독일 측도 곧바로 녹취록의 진위 여부 확인에 나섰고, 하루 만에 도청당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독일-러시아 녹취 공방전
 
이후 러시아측의 맹공이 시작됐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독일에 (녹취록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며 "질문에 답을 회피하려는 것은 유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 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은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의 오랜 라이벌 독일이 다시 원수로 변했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콘스탄틴 코사체프 연방평의회(상원) 부의장은 “독일로부터 확실한 반박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독일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독일 장교중 한 사람은 '우리는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한 대목도 있다"고 공세를 폈다. 

녹취록 파문에 한동안 침묵하던 크렘린도 4일 "서방이 집단적으로 우크라이나 분쟁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고 논평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녹취 내용이 독일군의 자체 행동인지, 국가 정책의 일환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둘 다 매우 나쁘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녹취에 대한 독일 당국의 조사 결과를 언론을 통해서라도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를 보는 독일 측의 반응도 착잡하다.
독일 연방군 장교 출신인 로데리히 키제베터 의원(기독민주당)은 "러시아가 독일의 의사 결정을 얼마나 깊이 파악하고 있는지 공개해 타우러스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저지하려는 의도"라며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분열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일부 정치인과 정보 장교들은 러시아가 숄츠 총리를 포함해 독일 내부의 대화를 더많이 가로채고 있다며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일간지 빌트는 4일 독일 해외정보국(BND)의 전 국장 아우구스트 해닝의 말을 인용, "통상 성공적인 도청 작업은 출처를 숨기기 위해 공개되지 않는다"며 "이번 녹취록 유출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외교 안보 정책 전문가도 "총리와 그의 측근을 포함해 독일 정부의 다른 구성원들이 도청을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도청 녹취록의 공개는 시간의 문제이자 적절한 타이밍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는 오랫동안 우리를 '적'으로 간주해 왔다”고 지적했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의 정치 평론가인 토마스 시그문트는 4일 숄츠 총리가 타우러스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제공에 반대하면서 2025년 총선 캠페인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민당(SPD)을 '평화 정당'으로 만든 빌리 브란트(전후 서독의 동방정책 창시자/편집자)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뒤를 이어 '평화 총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 미사일의 제공을 거부했다"며 "내년 총선을 겨냥한 그의 선거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숄츠 총리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비난하고, 독일군 파견을 거부했던 슈뢰더 전 총리의 뒤를 따르고 있다"며 "경제적 손실을 두려하는 국민들에게 '평화총리'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은 나쁜 생각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시민들과 대화하는 숄츠 독일 총리/캡처

◇ 미 NYT의 한줄 평가는?

독일과 러시아간에 벌어지고 있는 '타우러스 미사일 공방전'에 대해 미 뉴욕타임스(NYT)는 4일 타우러스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을 바꿀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NYT는 "작년 '레오파트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한 독일의 결정이 우크라이나군의 성공적인 반격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독일은 기껏해야 100기 정도의 타우러스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오히려 러시아의 진격을 막기 위한 재래식 포탄과 러시아의 미사일·드론 공격에 대응하는 '첨단 방공시스템'이라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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