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부는 러시아 여성 도우미
이탈리아에 부는 러시아 여성 도우미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8.05.15 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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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성들은 유럽으로 나가기를 원한다. 한국에 오는 러시아인들이 많지만, 대개 극동아시아나 중앙아시아족.모스크바 인근은 대개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유럽으로 나가서 일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러시아여성들이 이탈리아의 독거 노인에게 꼭 필요한 도우미를 자청한다고 한다.

현재 이탈리아 노인 3명 가운데 1명이 독거 노인이다. 평균수명이 길어 유럽에서 장수 국가로 첫손 꼽히는 이탈리아는 2030년에는 인구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 그리고 80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다보니 혼자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기가 벅찬 독거 노인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장애 노인들은 하루 종일 보살핌이 필요하다. 하지만 맞벌이로 바쁜 자녀들은 이런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 또 사립이나 시립 노인요양 시설의 월 이용료가 수천 유로에 달해 경제적으로도 도우미를 채용하는 게 훨씬 낫다.

또 이탈리아 노인들은 자식이 있어도 자신이 평생 살던 집에서 여생을 마치는 것을 선호한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에도 자식 집에 얹혀사는 방식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이탈리아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에서 온 도우미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아시아, 페루를 비롯한 남미 출신 등 200만명 이상의 외국인 도우미가 일하고 있다. 그러나 도우미 공급은 여전히 절대 부족한 형편이다. 이제 도시마다 도우미 에이전시, 도우미 직업교육이 개설돼 있고 베이비시터보다 노인 도우미를 찾는 사람이 더 많다.

외국인 도우미들은 대부분 고국에 자녀와 남편이 있는 30대 여성들로 동유럽 출신이 가장 많다. 이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해 도우미 일을 구한 뒤 대개 이탈리아에 눌러앉는다. 도우미의 56.8%가 불법 이민자라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 정부는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정규 이민자로 받아주는 특별이민법을 시행했다. 이때 6만5000명의 도우미를 정규 이민자로 받아들였는데, 정규 이민을 신청한 도우미 수가 무려 71만1000명에 달했다.

입주 도우미는 숙식 제공 외에 최소 월 800~1000유로(120만~15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이들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이탈리아어 구사 능력이다. 노인들과 기본적인 의사소통 외에도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이 돼줘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르데냐 장수촌 노인들의 유전자를 수년간 연구하고 있는 데이아나 교수는 친자식, 친손자의 사랑과 보살핌은 100세를 넘기는 장수 비결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싫든 좋든 이탈리아 가정의 글로벌화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물론 초창기에는 문제도 많았다. 외국인 노인 도우미가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 무렵. 당시 특별이민법 시행으로 50만명의 이주여성 노동자가 대거 입국하면서 도우미 돌풍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지방의 한 마을에서는 노부모를 모시는 금발의 러시아 도우미들에게 반한 장년층 남성들이 줄줄이 이혼하고 새장가를 가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위기를 맞은 마을 중년 여성들이 시장을 찾아가 러시아 도우미 입성을 전면 거부하는 집단항의 소동을 벌여 이탈리아 전역에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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