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대통령,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다 - 또 헌정중단 사태
키르기스 대통령,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다 - 또 헌정중단 사태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0.16 0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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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2005년, 2010년에 이어 대규모 시위로 벌써 3번째 중도 사퇴
인근 중앙아 국가의 권위주의 체제와 달라, 외신서 '민주화 의식 높다' 평가도

총선 불복 시위에 직면한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61)이 15일 스스로 물러났다. 총선(10월 4일)을 치른지 11일만에 또 한번 '쿠데타성 시민혁명'이 이뤄졌다. 키르기스는 10년 전에도 대통령이 시위대에 밀려 사퇴한 바 있다.

제엔베코프 키르기스 대통령, 사임/얀덱스 캡처

중앙아시아 5개국은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한 뒤, '소비예트식' 권위주의 체제가 유지됐으나, 유일하게 키르기스스탄에는 '시위로 헌정이 중단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일부 외신은 30년 가까이 '1인 독재'가 계속됐거나 혹은 계속되는 카자흐스탄, 타지크스탄 등 인근 국가들보다 키르기스 국민의 민주화 의식이 높다는 뜻으로도 해석하나, 정치 불안은 키르기스의 경제 발전과 민생 안정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지닌 키르기스는 정치적 안정에 지역 개발이 조금만 더 이뤄진다면, 더욱 많은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도 있다. 

대통령의 사퇴로 권력을 갓 취임한 야권의 사디르 자파로프 총리에게 넘어갔다. 키르기스 헌법상으로는 의회 의장이 대통령 유고시, 권한대행을 맡기로 되어 있으나, 카나트 이사예프는 "임기가 곧 끝난다"며 고사했다. 

키르기스스탄 의회 이사예프 의장, 대통령 권한 대행 고사/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공보실 사이트에 올린 대국민 성명에서 "나는 권력에 매달리지 않는다. 키르기스스탄 역사에서 피를 흘리고 국민에게 총을 쏜 대통령으로 남고 싶지 않다"며 사퇴했다. 그러면서 "(야권을 대표하는) 총리와 다른 정파 지도자들도 지지자들을 해산시켜 비슈케크 주민들에게 평화로운 삶을 되돌려 줄 것"을 촉구했다.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사임 카드'를 앞세워 비슈케크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배치하는 등 법질서 유지와 정국의 정상화에 강한 의지를 내보였으나, 일부 야권 시위대는 이날까지 '대통령 사퇴' 시위를 벌여왔다.

그는 자파로프 신임 총리와 만나서도 "지금 사퇴할 경우 예측 불가능한 혼란 사태가 촉발될 수 있다"며 "총선 재선거를 치르고 새 대선 일정을 잡은 뒤 사퇴하겠다"며 버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임 성명에서 언급했듯이, 자신이 계속 버틸 경우 야권과 대통령 지지자들 간에 충돌이 불가피하고, 급기야 군이 투입되면서 대규모 유혈사택 벌어질 것을 우려해 '즉각 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의 위임을 받은(특사로) 코작(행정 부실장)이 키르기스 대통령 방문/러시아 언론 rbc 캡처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 키르기스 재정지원 중단/얀덱스 캡처

사퇴 과정에서 러시아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의 드미트리 코작 부실장이 극비리에 비슈케크로 와 제엔바코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15일 키르기스 정국 혼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재정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며 압박했다. 

러시아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약 2억5천만달러를 지원했으며, 7억달러 이상의 채무를 탕감해준 바 있다.  지난 8월 키르기스스탄에 1억 달러를 대출해 주기로 한 유라시아 안정화및개발기금(EFSD)은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다. 

사퇴한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전임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대통령 밑에서 총리를 지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 2017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했다. 당시 첫 평화적 정권교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지난해 안보위원회(KGBK) 특수 부대를 동원해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을 구속하는 등 권력 강화를 시도해왔다. 이번 사태도 조직적인(?) 부정선거로 의회을 장악하려다 야권의 총선 불복 시위를 부른 것으로 해석된다.

키르기스스탄 의회는 16일 제엔베코프 대통령의 사임안을 승인하고 대통령 권한 대행을 확정할 예정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개월 내에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조기 대선을 실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에 망명중 귀국한 뒤 구속됐다가 이번 시위 와중에 석방된 자파로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권력을 바탕으로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와 총리직을 다툰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 지지세력과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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