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벨라루스 '통합 프로그램' 구체 내용을 살펴보니 - 아슬아슬한 밀당 당연?
러-벨라루스 '통합 프로그램' 구체 내용을 살펴보니 - 아슬아슬한 밀당 당연?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9.11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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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국가연합 협상에 첫 마침표를 찍은 푸틴-루카셴코 대통령 담판
가스 등 에너지 가격 조정이 마지막 걸림돌 - 2023년 단일화에 합의

'가속 페달: 러시아와 벨로루시, 통합 프로그램 합의'(이즈베스티야 지)
'푸틴과 루카셴코, 연합국가 되살려'(인터넷 매체 브즈글랴드)
'푸틴과 루카셴코, 연합국가의 형성에 중요한 진전'(인터넷 매체 레그넘)
'새로운 차원의 통합'(TV채널 엔테베· NTB')
'푸틴과 루카셴코, 러시아와 벨로루시 통합의 돌파구 마련'(TV채널 -5)

러시아와 벨라루스간 '국가연합' (창설)을 위한 '28개 프로그램'이 9일 양국 정상에 의해 합의된 뒤, 현지 포탈 사이트 '얀덱스'(yandex.ru)에 올라온 관련 기사들의 제목이다. 국영 타스 통신을 비롯한 현지 주요 언론들은 '푸틴 대통령과 루카셴코 대통령, 28개 통합 프로그램에 합의'라는 팩트 중심의 제목을 달았지만, 일부 언론은 합의 내용에 대한 평가를 드러내는 제목을 뽑았다.

푸틴 대통령, 러시아-벨라루스 28개 연합 프로그램에 대한 합의 밝혀. 얀덱스의 관련 기사 모음에는 '푸틴과 루카셴코, 연합국가 되살려' 등의 제목(맨위)들이 떠 있다 /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루카셴코 대통령의 18개 프로그램 합의안은 10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연방 각료회의에서 승인됐다. 이에 맞춰 러시아 당국이 구체적인 내용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언론들의 제목은 28개 프로그램 내용을 살펴본 전문가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현지의 평가를 집약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28개 통합 프로그램에 대한 현지 언론의 표현은 아직 제각각이다.
▽ '28 союзныe программы России и Белоруссии'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28개 연합 프로그램),
▽ '28 программы по Союзному государству' (연합국가용 28개 프로그램), 
▽ '28 интеграционные программы Союзного государства' (연합국가 28개 통합 프로그램) 등으로 쓰였다.

양국 정상의 공식 발표 이전에는 주로 '31 интеграционных «дорожных карт»'(31개 통합 로드맵)이라는 표현이 주를 이뤘는데, 실무진의 협의 과정에서 기존의 31개가 28개로 줄어들고, '로드맵'이 '프로그램'이란 표현으로 바꿨다.

합의안에서 핵심 문구는 역시 'Союзноe государствo' (연합국가)라는 표현이다. 양국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국가 통합의 목표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로 'Союз'(소유즈)는 연합, 동맹이라는 뜻이다.

해체된 소련의 정식 명칭은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소비예트 사회주의 국가 연합)으로, '소유즈'가 들어가 있다. 연방 해체후 결성된 느슨한 국가연합 체제인 CIS는 'Содружество Независимых Государств' (독립된 국가들의 친선 모임 연합체)로, '소유즈'가 빠졌다.

반면 러시아 연방은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로, '소유즈'(Союз) 대신 '페데라찌야'(Федерация)를 갖고 왔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면, union이 아니라 federation이다.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연방 안으로 흡수통합하는 게 아니라, 소련과 같은 연방제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루카셴코 대통령을 반갑게 맞이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푸틴-루카셴코 대통령이 전날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28개 프로그램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양국은 '연합국가'의 추진 방향을 일단 '경제적 통합'에 초첨을 맞췄다. 거시경제와 통화, 산업, 조세 등 각 부문에서 경제정책의 수립 방향을 조율하면서 석유·가스·전력 등 에너지 분야의 단일 시장을 형성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푸틴 대통령도 전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연합국가의 틀 내에서 평등하고 상호 유익한 경제적 협력이야말로 양국 통합의 전략적 우선 순위"라며 "합의된 프로그램들은 경제 분야의 법제 단일화와 양국 각 주체들의 동등한 경제 활동 보장, 단일 금융·에너지 시장 조성, 공통의 산업 및 농업 정책 마련과 그 이행 등을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추상적인 내용은 20여년 전인 1999년 체결된 양국의 '연합국가' 창설 협정에도 이미 담겨 있었지만,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러-벨라루스 자유무역및 관세 통합 정책 정도다. '연합국가' 창설 협정은 처음부터 외교와 예산 수립, 세제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단일화를 추진하고, 관세와 에너지 및 운송 시스템의 통합을 달성하기로 천명한 바 있다. 

20년 전이나 이번이나 양국의 정치적 통합 작업은 뒤로 밀렸다. 양국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치 통합에 대해 서로 공감을 이루지 못했고, 단일 통화 도입도 마찬가지였다"며 "이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다루지 않았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미래에는 연방 의회가 설치되겠지만, 이번에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루카셴코 대통령은 "필요할 경우, 언제든 협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자파트-2021' 훈련에 첫선을 보인 무인장갑차 '플래폼-M'/현지 매체 RT캡처
'자파트-2021' 훈련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수부대 적진 침투 낙하훈련/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양국은 또 10일부터 1주일간 ‘자파드(서쪽이라는 뜻) 2021’이라는 대규모 공동 군사 훈련에 돌입했다. 양국의 14개 훈련장에서 동시에 시작된 '자파트 2021' 훈련은 지난 2009년부터 4년마다 한번씩 실시하는 훈련이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러시아-벨라루스 '연합국가'에 대한 서방 측의 공격 상황을 상정한 상태에서 진행된다고 러시아 국방부는 밝혔다. 

푸틴-루카셴코 대통령의 이번 합의가 '양국 통합의 돌파구', 또는 '통합 가속 페달'이라는 분석이 현지 언론에 나온 것은 '연합국가' 창설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양국은 '통합 로드맵'을 만들기로 한 '연합국가' 창설 협정에 따라 2019년 들어 '로드맵 작성및 합의'를 서둘렀다. 그해 3월 시작된 협상은 6개월여만에 '단일 세법 체계와 민법, 대외무역 통합 체제 등을 2021년까지 만들고, 시행한다'는 내용의 '31개 로드맵' 작성에는 성공했으나, 실질적인 시행 합의에는 실패했다. 러시아의 세법 체계와 농산물 공급, 가스 및 석유 가격 문제가 합의 도출을 막아선 것이다. 

푸틴 대통령, 루카셴코 대통령과의 회담을 유익하고 건설적이라고 밝혀/얀덱스 캡처

타결의 마감 시한(2019년 12월 31일)이 점차 다가오면서, 양국은 '통합 로드맵' 협상을 '총리급'으로 격상하고, 양국 정상이 만나 담판을 벌이기도 했으나,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의 단일화였다. 벨라루스는 '연합국가' 창설의 전제조건으로 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의 차별 철폐를 내세웠다. 러시아가 1,000입방미터당 128.5달러로 벨라루스측에 공급해온 가스 가격을 러시아 수준(약 55달러)에 맞춰 대폭 인하해 달라는 것. 이에 대해 러시아 측은 '연합국가'를 창설하면 가격은 자연적으로 낮아질 것이라며 인위적인 가격 인하를 반대했다.

벨라루스는 또 러시아의 부가세 등 각종 세제에 따른 자국의 손실을 보상하고, 벨라루스 석유제품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도 해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로서는 선뜻 수락하기 힘든 조건들이었다.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12개의 공동 기구 설치도 벨라루스 측이 거부했다. 

난관에 부딫힌 '통합 로드맵' 협상의 전환점은 의외의 순간에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지난해 8월 민스크를 휩쓴 벨라루스 대선 불복 대규모 시위였다. 이 시위로 무려 30년 가까이 권력 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해온 루카셴코 대통령이 한순간에 정치적 위기에 빠졌고, 서방 측의 경제제재로 벨라루스의 경제적 어려움도 가속화했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도 악재였다.

지난해 시위 당시 벨라루스 민스크 도심 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대(위)와 대통령궁 앞에 늘어선 진압 경찰들/사진출처:SNS

정권이 전복될 위기로 몰린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교묘한 줄타기 전략'을 완전히 포기하고 푸틴 대통령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결코 싫지 않는 상황 전개였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그를 따뜻하게 맞았고 전폭적 지지를 다짐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에 대한 자금 지원에 앞장섰다. 지난해 10월 러시아 주도의 구소련권 금융협의체인 ‘유라시아 안정발전펀드’를 통해 15억 달러의 차관을 벨라루스에게 제공하고, 이번 회담에서도 내년 말까지 6억3천만~6억4천만 달러(약 7천400억 원)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루카센코 대통령이 올해들어 다섯번이나 러시아를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현지 일간지 '프라우다'(구 소련공산당 기관지)는 '정상회담 결과: 푸틴은 루카셴코에게 양보했지만 (게임엔) 이겼다'는 제목을 붙였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합의로 △벨라루스에서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의 변화가 발생할 경우에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가스 공급 가격을 내년 말까지 현 가격(1,000입방미터당 128.5달러)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벨라루스는 그동안 벨로루시와 접한 러시아 스몰렌스크주의 가스 도매 가격인 1,000 입방미터당 55달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100달러 미만으로 낮춰달라고 고집을 부렸으나, 결국 뜻을 굽혔다. 

그 대가로 러시아는 △2023년 12월 1일까지 가스 시장의 단일화를 추진하고 △석유 및 석유 제품 시장을 통합하며 △양국 항공운항 분야에서 벨라루스를 신종 코로나 제한조치 대상에서 완전히 빼주기로 했다. 또 양국의 조세제도를 검토할 새 기구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세제 문제도 마지막 순간까지 골치거리였다. 러시아는 지난 2019년 기존의 원유 수출관세(원가의 30%)를 점진적으로 철폐하기로 했는데, 무관세로 석유를 수입해 해외시장에 팔아온 벨라루스에게는 큰 경제적 타격을 안겨주는 조치였다. 오는 2024년까지 추정되는 벨라루스의 손실만도 105억~110억 달러에 이르니, 벨라루스가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벨라루스 국세 수입의 급감을 초래할 러시아의 부가가치세도 문제였다. 벨라루스는 러시아 측에 적절한 재정지원을 요구했다. 국가 통합을 원한다면, 경제적으로 계속 자신들을 도와달라는 억지성 주장이다. 

정상회담 후 '통합 프로그램 합의'를 발표하는 푸틴-루카셴코 대통령의 공동기자회견/사진출처:크렘린.ru 

루카셴코 대통령은, 비록 억지를 부렸지만, 실제 협상에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관철한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을 다 한다! 루카셴코는 허풍과 협박으로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목표를 관철한다' (노브이 이즈베스티야), '푸틴과 루카셴코, 동등한 조건으로 합의' (경제지 코메르산트) 등의 언론 제목이 그 것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연합국가' 추진을 자신의 마지막 미션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후계자들을 복수로 공개하고, 내년 개헌 후 물러날 것이라고 거듭 공언했다. 개헌 작업은 러시아와의 '연합국가' 창설을 위한 법적 토대가 되고, 퇴임후 자신의 신변 보장을 겨냥한 것으로 일단 관측된다. 

러시아가 벨라루스와의 '연합국가' 창설에 매달리는 것은 벨라루스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벨라루스는 동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흑해, 서쪽으로는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북쪽으로는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에 둘러싸여 있다. 벨라루스를 장악하면, 러시아는 적대적인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폴란드를 견제할 수 있다. 거꾸로 우크라이나는 남부 몰도바와 루마니아 국경을 빼면 3면이 러시아에 포위되는 상황에 처한다. 

구릉 지대로 이뤄진 벨라루스와 러시아 사이에는 국경이라고 할 것도 없다. 모스크바에서 민스크 방향으로 뻗은 대로를 따라 달려가면 민스크에 도착한다. 신종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육로 국경에 출입국 관리나 세관 절차도 없었다. 심지어 모스크바에서 벨라루스로 가는 항공편이 국제선 청사가 아니라 국내선 청사에 위치하기도 했다. 

푸틴과 루카셴코 대통령, 9월 9일 러시아-벨라루스 통합 계획 서명할 것/얀덱스 캡처

'국가연합' 통합 프로그램 합의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4월 말쯤이다. 28개 프로그램 중 26개 프로그램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세제와 에너지 가격을 놓고 최종 밀당이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 8월 말에는 양국 실무협의에 관여해온 블라디미르 세마쉬코 주러 벨라루스 대사가 "무려 3년에 걸친 협상 끝에 양측은 28개 통합 로드맵(28 интеграционных дорожных карт)에 서명할 준비를 끝냈다"고 전격 발표했다. '로드맵'이라는 표현은 그러나 '벨라루스의 흡수통합'을 의미한다는 부정적 여론에 '28개 통합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벨라루스 측은 통합 프로그램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벨로루시 의회의 외교위(국제문제 담당) 안드레이 사비누흐 위원장은 지난달 말 "통합 로드맵 서명은 벨로루시와 러시아의 단일시장, 나아가 유라시아 경제적 공간의 통합을 향한 중요한 진전"이라며 "공동시장 형성과 양국 기업간 분업을 통해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통합이 벨로루시의 주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우여곡절 끝에 타결된 '연합국가' 프로그램에 따라 러시아와 벨라루스 양국은 앞으로 점진적으로 통합된 거시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에너지 시장을 단일화하며, 공통의 통화신용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5월 흑해 상의 요트 위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푸틴-루카셴코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그렇다고 통합 추진 과정이 순조로울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2월 국민의 71.5%가 러시아와의 통합에 찬성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와는 다른 여론 조사도 나와 있다. 지난 2019년 말에는 러시아와의 통합에 반대하는 시위가 민스크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연합국가'의 조직 구성에 관한 협상에서 퇴임하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신변 보장을 놓고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소련 해제와 함께 30년 가까이 떨어져 살아온 두 국가가 다시 합치려니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불거지는 건 당연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너지기는(분열) 쉬우나, 다시 세우기(통일)는 힘들다. 이를 극복하는 힘은 결국 러시아가 갖고 있다. '러시아-벨라루스 국가연합'의 출범은 앞으로도 러시아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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