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군부대로 번진 소련 록의 전설 고려인 '빅토르 최' 노래 따라부르기, 왜?
우크라 군부대로 번진 소련 록의 전설 고려인 '빅토르 최' 노래 따라부르기, 왜?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6.12 0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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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출신으로 소련의 전설적인 로커로 자리매김한 '빅토르 초이(최)'의 노래를 따라 부르자는 '해쉬태크(#) 달기 운동'이 우크라이나에서 번져나가고 있다. 엄밀히 말해 모든 SNS에서 확산되는 '해쉬태크 운동'은 아니다. '숏폼'(short-form·짧은 길이)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TikTok)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틱톡'은 출시 후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며 2020년 10월 20억건의 모바일 다운로드를 달성했고, 이듬해 구글 검색엔진을 능가하는 가장 인기 있는 서비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생전의 빅토르 최 공연모습/사진출처:인스타그램

'초이 노래 따라부르기'는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의 10대 길거리 가수가 지난 3일 서부 르보프(리비우)에서 '빅토르 초이'의 노래를 부르다 현지 주민과 충돌한 영상이 인터넷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빅토르 최'의 노래말은 당연히 러시아어. 그의 노래라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어로 불러서는 안된다'는 과도한 민족주의에 반발한 젊은이들이 '따라 부르기'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이렇다. 길거리 가수의 '초이 노래'를 들은 현지 여성이 "지난해 10월 이후 르보프에서 러시아어 사용이 금지됐다"며 그만 부를 것을 요구했다. 화가 난 10대 가수는 욕설을 섞어가며 "빅토르 (최)는 전설적인 록 가수다. 가수인 나는 그의 노래를 부르고, 당신은 당신 일이나 잘하면 된다. 남편이 있는지, 자녀가 있는지, 직업이 뭔지 상관하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내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르보프 길거리에서 '빅토르 초이' 
르보프 길거리에서 빅토르 초이 노래를 부른 10대 길거리 가수(위)와 이를 문제 삼은 여성의원 피파/사진출처:영상 캡처, 페이스북

말다툼 영상이 인터넷에 오른 뒤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사과해야 했다. 그 배후에는 '초이 노래'를 놓고 한때 충돌한 르보프 출신 여성 국회의원 나탈리아 피파가 있었다고 한ㄷ나. 젊은 가수는 나중에 "강제로 떠밀리듯 지역 주민에게 욕설한 데 대해 사과했을 뿐, '초이 노래'를 부르는 데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르보프 미성년자 보호소에 갇혔다. 

며칠 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초이 노래'를 부른 길거리 가수를 응원하며 '따라 부르자'는 영상과 목소리가 '틱톡'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 스트라나.ua는 9일 "러시아와의 전쟁 중에 러시아어로 된 노래를 부른 친구를 응원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나"며 "이전에 없었던 현상이며, 러시아와의 전쟁도 이를 막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전장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는 우크라이나군 병사들까지 참호에서 전선에서 기타로 '초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틱톡에 올리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놀라면서 "군을 포함해 많은 분야에서 지금은 러시아어 사용 문제를 제기하고, 러시아어 사용자들을 차별할 때가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러시아와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올린 '초이 노래 따라부르기' 영상들/캡처

정치학자인 루슬란 보르트니크는 "'초이 노래' 따라 부르기는 러시아어를 쓰고 안쓰고의 차원이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에 속하는 문제라는 인식이 젊은 계층에서 넓게 퍼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선에 있는 군인들마저 개인 사생활에서 어떤 언어로 말할지, 어떤 노래를 부르고 들을 지 결정할 권리를 누군가가 독점하고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생각하고. 이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또 다른 정치 전문가 드미트리 스피바크는 "여성 정치인 피파는 소련시절 '빅토르 최'가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에 저항한 로커라는 점을 잊은 것 같다"며 "우크라이나가 한마음으로 푸틴 정권과 맞서 싸우는 것도 같은 심리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어를 쓰는 군인들이 바흐무트 근처에서 우크라이나 방어에 나서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의사들이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있다"며 "침략자(러시아군)들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은 이해하지만, 더 이상 언어가 애국심의 상징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쟁을 계기로 급속하게 진행된 우크라이나화(러시아어 사용 퇴출)에 대한 반발도 감지된다. 스트라나.ua는 "많은 여론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우크라이나화에 대한 국민 관심도는 낮다"며 "그것이 일상생활에 거의 영향을 못미쳤기 때문"이라고 봤다. 2022년에는 러시아어 교육도 사라졌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러시아어가 소셜 네트워크(SNS)에서 의사 소통하고 팔로워를 모으고, 돈을 버는 인플루언스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 역설적이다.

빅토르 초이 노래 따라부르기 영상 모음

전쟁이 터진 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어는 적국의 언어'라는 구호 아래 일상생활에서도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반작용이 일어났다. 수많은 러시아어 사용자가 전선에서 러시아군과 맞서 싸우고 있는데, 그들이나 부모·친인척들에게 '러시아어를 쓰면 애국자가 아니다'는 말은 솔직히 모욕적이다. 

스트라나.ua는 "이같은 추세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말하기 어렵다"면서 "전문가들은 '초이 노래' 주제가 우크라이나 사회의 중요한 사회·정치적 경향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루슬란 보르트니크는 "전쟁 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민족 중심적이 되면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소극적이 되고, 반대의 경우 새로운 애국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며 "이 노선 투쟁이 국가의 미래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후에도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이라는 암시다. 역사적 전통으로도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붕괴후 서방 진영에 깊숙히 흡수된 '발트 3국'과는 다른 게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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