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략 요충지 아브데예프카 함락 이후 - 어디에 제 2의 방어선을? 우왕좌왕?
우크라 전략 요충지 아브데예프카 함락 이후 - 어디에 제 2의 방어선을? 우왕좌왕?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2.18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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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 

지난 4개월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퇴각하기로 한 우크라이나군의 아브데예프카(아우디우카) 철수 결정에 대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설명을 들어보면, 딱 이 뉘앙스다. 그는 17일 독일 뮌헨안보회의(MSC) 이틀째 회의 연설에서 "포위를 피하기 위해 철수를 결정했다"면서 "몇 킬로미터 물러났다고 해서, 러시아의 아브데예프카 점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 지휘부는 이날 새벽 아브데예프카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야음을 틈타 은밀히 군대를 뺀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군은 이날 저녁 아브데예프카를 완전히 점령한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푸틴 대통령에게 곧바로 승전 소식을 보고한 이유다. 

꼭 1년 3개월 전인 2022년 11월, 러시아군이 개전 직후 장악했던 남부 헤르손주(州)의 주도 헤르손시(市)에서 철수했다. 헤르손시를 가로지는 드네프르강의 서쪽 지역에서 야밤에 강을 건너 동쪽으로 물러난 것이다. 그리고 강을 천연요새로 삼아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저지했다.

강 서쪽의 헤르손 도심을 되찾은 우크라이나군은 탱크를 몰고 들어와 대대적인 자축행사를 벌였고, 젤렌스키 대통령도 "러시아군을 물리쳤다"며 승전을 축하했다.

헤르손시에 진입해 승리를 자축하는 우크라이나군 탱크들/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그 과정을 보면 아브데예프카와 헤르손은 완전히 닮은 꼴이다.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6.24 군사반란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사실상 군복을 벗은 세르게이 수르비킨 장군이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총사령관에 임명된 뒤 첫 작전 명령으로 '헤르손 퇴각'을 결정했다. 드네프로강에 배수진을 친 러시아군 특수 부대가 자칫하면 우크라이나군의 포위작전에 몰려 전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장병들의 목숨을 구하고, 보다 유리한 곳에서 방어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아브데예프카 철군을 결정한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 의장격)도 취임 1주일여만에 '퇴각'을 명령했다. 수로비킨 장군의 이전 설명과 거의 판박이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전임 발레리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아브데예프카 포기' 건의를 거부하고, 끝까지 사수를 명령했던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

달라진 건 전황이 아니라, 건의자였다. 그리고는 '러시아군의 점령이 아니다'고 강변(?)했다.

퇴각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헤르손에서 철수한 러시아군은 넓은 강을 앞에 두고 제 2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반면, 아브데예프카에서 물러난 우크라이나군은 제 2의 방어선을 어디에 칠 지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팽팽한 실이 끊어지듯, 사기가 꺾인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공세에 대책없이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할 분위기다.

아브데에프카에서 퇴각하는 우크라이나군 탱크/영상 캡처

◇ 아브데예프카의 전략적인 중요도는?

통상, 아브데예프카를 지난해 6월 러시아군에게 함락된 '제 2의 바흐무트'라고 하지만, 군사전략적인 중요도를 감안하면, 개전 초기의 격전지였던 '마리우폴'에 가깝다. 당시 마리우폴을 사수하던 민족주의 성향의 아조프(아조우)연대 등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수천 명이 투항해야 했다.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을 발판으로 크림반도를 육로로 잇는 도네츠크주(州) 남서쪽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러시아군은 아브데예프카를 넘어 북서(北西)진을 계속하면서 포크로프스크와 콘스탄티노프카를 거쳐 슬라뱐카와 크라마토르스크 등 도네츠크주 서부 주요 도시들을 손아귀에 넣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브데예프카(표식) 주변 지도. 바로 밑에 도네츠크시가 있고 가장 왼쪽에 포크로프스크가 보인다. 아브데예프카에서 위쪽으로 토레츠크, 콘스탄티노프카로 진격하면, 오른쪽의 바흐무트 점령 러시아군과 함께 맨위쪽의 크라마토르스크로 곧장 치고 올라갈 수 있다/얀덱스 지도 캡처

공교롭게도 아브데예프카 공격 부대는, 개전 초기 마리우폴 공격을 주도한(체첸 전사들도 협공) 안드레이 모르드비체프 러시아 장군이 이끌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지휘부는 '제 2의 마리우폴' 사태를 막기 위해 철군을 결정했지만, 밀려오는 러시아군의 진격을 어디에서 막아설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브데예프카는 도네츠크주 주도 도네츠크시(市)을 코 앞에 둔 우크라이나군의 요새였다. 도네츠크시를 포 사정권 안에 두고 있어 도네츠크 시민들은 언제 아브데예프카에서 포탄이 날아올 지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도네츠크시를 중심으로 한 도네츠크 중부 지역은 포격 공포에서 한 시름 놓게 됐다. 

러시아군의 아브데예프카 점령은 오는 24일로 다가온 개전 2년과 내달 대선을 앞두고 군의 사기 진작을 노리고 있는 푸틴 대통령에게는 매우 상징적인 전과가 될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은 아브데예프카 점령 보고를 받고 러시아 군이 중요한 승리를 거둔 데 대해 축하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의 아브데예프카 점령이 1천500㎞에 달하는 전선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큰 군사적 승리는 아닌 것으로 일단 평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내부 진단은 조금 차이를 보인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아브데예프카는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방어 중심지였다"며 다른 도시의 방어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주변의 많은 도시가 아브데예프카 만큼 강력한 요새를 구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우크라군 퇴각 작전 - 부상자 남기고, 포로로 잡히고..

우크라이나군은 퇴각 과정에서 병력 손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이 지역을 방어해온 알렉산드르 타르나프스키 장군은 "모든 병력이 도시를 빠져나오지 못했다"며 "일부 군인이 포로로 잡혔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SNS)에도 그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영상물이 올라왔다. 대표적인 게 부상한 오빠와 틱톡으로 통화하는 누이의 영상이다. 오빠는 "하루 반 동안 대피를 기다리고 있다"며 "진통을 줄여주는 모르핀도 떨어지고 음식도 바닥났다"고 말했다. 또 몇 시간 후에는 "대피를 못할 것 같다"며 "항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그의 방으로 러시아군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오빠와 여동생의 틱톡영상/캡처

스트라나.ua는 "지난해 10월 10일 시작된 아브데예프카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은 오늘 공식적으로 도시의 함락으로 끝났다"고 썼다. 

아브데예프카의 함락은 한동안 떠돌던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시도가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현장'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러시아군의 병력 규모와 군사 장비 등이 우크라이나군을 능가하고, 추가로 투입할 우크라이나군의 예비 병력도 부족했다는 뜻이다.

특히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아브데예프카에서 러시아군 '에어 폭탄'의 위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항공기로 투하하는 일반 폭탄으로 보이지만, 목표 설정을 가능하도록 개량한 강력한 무기라는 것. 그는 이 '에어 폭탄'을 막기 위해서는 폭탄을 투하하는 항공기를 격추할 수 있는 방공시스템이 시급하고, 적 군사시설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과 포탄, 방어 요새의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군의 드론 활용도 크게 늘고 숙련도가 높아졌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아브데예프카 코크스 공장 건물 지붕에 러시아기를 게앙하는 모습/영상캡처

우크라이나군 내부의 사기 문제도 있다. 전쟁에서 금기시 되는 '장수의 교체'(잘루즈니 총참모장의 경질) 직후 아브데예프카가 함락됐기 때문이다. 또 권력(젤렌스키 대통령)과 군부 간에 벌어진 군사 작전상의 대립은 시르스키 신임 총참모장의 입지를 좁히고, 나아가 우크라이나 군 내부에 '싸울수록 더 많은 병력과 땅을 잃고,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패배주의를 심어줄 수도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짚었다. 

◇우크라군의 다음 방어선은 어디?

아브데예프카를 떠난 우크라이나군에게 현실적으로 들이닥친 문제는 어디에서 '제 2의 방어선'을 칠 것이냐다. 우크라이나 군사전문 사진 기자 블라다 리베로프는 SNS를 통해 "그럼, 다음 요새는 포크로프스크인가요? 아니면 콘스탄티노프카인가요?"라며 "제 2차 방어선은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었다.

자진 입대한 전직 의원 이고르 루첸코도 페이스북에서 "러시아군이 계속 안정적으로 공세를 취하고 있다"며 "아브데예프카 이후 어디냐?"고 했다. 그는 "이전에 마리인카가 있었고. 마리인카 이전에는 바흐무트, 바흐무트 이전에는 리시찬스크였다. 쿠라호보-우글레다르, 스테프노예, 쿠퍈스크 다음에는? 하르코프(하르키우)와 자포로제가 그 다음이라고 생각하느냐?"며 "북부 벨라루스 국경 인근의 늪지대나 드네프르 강과 같은 자연적 방어선이 없는 한, 러시아군의 공격은 거침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러시아군이 아브데예프카의 서쪽 포크로프스크를 향해(나아가 파블로그라드) 공격을 개시한다면 남부 전선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전체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또 자포로제시(市)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영향권 하에 있는 자포로제주 나머지 지역으로 제 3의 전선을 열 수도 있다고 한다. 

스트라나.ua는 아브데예프카 함락 직전인 15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의 '군사적 전망' 코너에서 "러시아군의 자포로제 공격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점진적인 진격이나, 하르코프 공습보다 더 위험하다"며 우크라이나 남부 전선의 물자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니코폴과 크리보이 로그, 트란스니스트리아(몰도바의 친러시아 독립 선언 지역, 러시아어로는 프리드녜스트로비예)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를 드네프르 강 서안(西岸)에 구축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의 흑해 접근로가 확연히 줄어든다.

러시아군이 자포로제주의 주도 자포로제(맨 오른쪽)을 장악할 경우, 카호프카 댐 저수지의 아래쪽 니코폴과 원전이 있는 에네르고다르는 물론, '크리보이 로그'(맨 왼쪽)로 서진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얀덱스 지도 캡처

안타깝게도, 러시아군은 17일 자포로제 인근 지역에 대한 대규모 포격을 이미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러시아 텔레그램 채널은 포격 장면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올렸다. 당초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지난해 여름 반격작전으로 수복한 라보티노와 베르보보이 마을 인근으로 특정됐으나, 더 서쪽 지역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측은 이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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