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에 배불리는 동원및 징집업무 책임자에 칼 댄 젤렌스키 대통령, 검은 유혹은?
전시에 배불리는 동원및 징집업무 책임자에 칼 댄 젤렌스키 대통령, 검은 유혹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8.12 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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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또 '부패 척결의 칼'을 뺐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전 발발 직후 발령된 계엄령과 총동원령에 따라 동원될 예비역들과 군 입대 대상자들을 관리하는 각 지역의 군사위원(군 등록및 입대 사무소 책임자. 우리 식으로는 지역 병무청장/편집자)들이 그 대상이다.

지난해 7월 러시아 정보기관과의 결탁 등을 이유로 국가보안국(SBU, 우크라이나 정보기관/편집자) 수장과 지역 책임자들을 대거 물갈이하고, 올 1월에 터진 군납 비리 스캔들을 계기로 국방및 인프라부 차관과 대통령실 고위 인사 등을 교체한 데 이은 3번째 특별 조치다. 모두 전시에 유혹이 많은 '골든 자리'(꽃 보직)이다.

지난 1월에 터진 군납 비리의 대책을 논의하는 우크라이나 의회 소위원회/사진출처: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군납비리에 연루돼 사임한 키릴로 티모센코 대통령실 차장/사진출처:tymoshenko_kyrylo 텔레그램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11일 국가 국방안보회의를 연 뒤 "전국 군사위원회(병무및 징집 담당 기관/편집자)을 대상으로 실시한 감사 결과, 부정 부패와 징병 대상자의 국외 도피 알선 등 권한 남용 사례들이 대거 드러났다"며 각 지역 군사위원들을 해임한다고 밝혔다. 그는 "병무및 징집 업무는 전쟁이 무엇인지, 전장에서 팔다리를 잃고도 존엄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냉소와 뇌물이 왜 반역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며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에게 군사위원 교체 권한을 부여했다. 원래 군사위원의 임면권은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에게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신임 군사위원들은 전투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하고, 국가보안국(SBU)의 신원 조회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동원 대상 남성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뒤 징집 여부를 결정하는 '군 의료위원회'에도 칼을 댈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군 의료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군사위원회로부터 '화이트 티켓'(белый" билет)을 받을 경우, 징집 면제는 물론 해외여행도 가능하다. '화이트 티켓'은 건강 상의 이유 등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동원 대상자 명단에서 제외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문서다.

보리소프 전 오데사 군사위원이 소유한 스페인의 별장/사진출처:스트라나.ua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같은 조치는 지난 6월에 터진 보리소프 전 오데사 군사위원의 비리 스캔들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보리소프 전 위원은 가족의 이름으로 스페인에 수백만 달러 상당의 별장과 외제차를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고, 해임된 뒤 구속된 상태다. 이후 각 지역 군사위원들의 비리 행위가 온라인을 통해 폭로됐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국 군사위원회에 대한 부패및 비리 행위 조사를 명령했다. 우크라이나 사법당국은 현재 수백 건의 군사위원회 관련 비리 혐의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위원회의 일상화한 부패 구조는 개전 초기 러시아군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크라이나 전 국민이 한 마음으로 전선으로 달려갔다는 '애국심'과는 완전히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전쟁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징집 공포가 군사위원에게 뇌물을 건네서라도 빠지고 싶은 욕망과 '구조적 부패 사슬'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추된다. 

스트라나.ua는 "각 지역의 부패 구조와 뇌물 행위가 존재하는 한, 군사위원의 교체만으로는 군사위원회의 부패 구조를 척결할 수 없다"며 "조직적인 해결 방안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수십만 명의 남성들이 전쟁터로 가지 않기 위해, 또 자기의 '목숨 값'으로 기꺼이 큰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이상, 군사위원회 주변에는 부패 유혹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최전선의 병력 손실을 보충하기 위한 동원의 규모가 클수록, 유혹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족들과 피크닉을 즐기던 중 동원 소환장을 전달하러온 군사위원 실무자들과 논쟁을 벌이던 중(위), 한명을 호수로 처박는 모습/텔레그램 영상 캡처

솔직히, 동원 대상 남성이 8천 달러 안팎의 뇌물을 주고 '화이트 티켓'를 손에 넣는다면, 전쟁 중에 목숨을 건지는 것은 물론이고, 원한다면 마음대로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 누가 마다하겠는가? 

돈 없는 우크라이나 남성들이 '화이트 티켓'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징집 연령이 되기 전에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것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곧 징집연령(18세)이 이르는 젊은 장정들이 대거 우크라이나를 탈출하고 있다는 폭로 글이 11일 인터넷에 올라왔다. 지난해 9월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 이후 러시아를 탈출한 젊은이들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우크라이나의 국제선 열차/사진출처:스트라나.ua

수도 키예프(키이우)에 사는 엘레나 치사르는 "장정들이 조국을 떠난다"며 "국경을 넘는 남자들을 살펴보면, 동행한 누이가 전화로 '방금 국경을 넘었다'고 가족에게 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국경을 넘는 열차에는 그런 장정들이 많이 있고, 그들은 영원히 조국을 떠날 것"이라며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가지 않기 위해 부모나 조부모, 누이들에 의해 나라 밖으로 쫓겨난다"고 한탄했다. 또 "이게 대체 누구의 선택이냐?"고 되물으며,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도 했다. 

이같은 흐름은 16~18세 청소년의 해외여행을 제한하는 법안이 의회(최고 라다)에 제출된 뒤 더욱 강해졌다. 물론, 국경 수비대는 17세 젊은이들의 출국 이유를 더욱 까다롭게 살펴보지만, 그래도 18세 이상 남성보다는 훨씬 수월하다고 했다. 

스트라나.ua는 "서방 외신도 최전선의 병력 손실에 대해 더 많이 보도하고 있다"며 "전쟁이 1, 2년 더 지속되면 군 복무가 가능한 모든 우크라이나 남성들이 전쟁터로 끌려갈 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최전선에 있는 병력들을 시급하게 교체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전시 체제 하에 어쩔 수 없는 병력 동원과 병력 기피자 사이에서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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